흔히 젊어서는 돈이 없어서 못 놀고, 나이가 들어 돈이 좀 여유가 생기니 건강이 못 따라주어 못 논다고 한다. 부모에게 많은 걸 받을 때는 미처 그 고마움을 모르고, 부모 되어 그 은혜를 헤아릴 수 있을 땐 부모가 기다리지 않는다고도 한다.
전문의를 따고 몇 년을 보내면서 아직은 학문적 열의가 식지 않았을 때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환자를 많이 보다보면 연구 보고를 해 보고 싶은 데이터들이 환자의 흐름 속에 눈에 보이는데 세팅하고 쓸 여력이 없고-실은 해야만 하는 필요조건 속이었다면 잠 덜자고 연구도 짬짬이 했으련만 충분조건이었기에 시행이 되지 않았다고 보아야 맞을 것이다-막상 논문을 써 볼 수도 있겠다 싶게 환자를 덜 보는 여유로운 상황에서는 데이터 소스가 아쉽다. 여러 가지로 인생의 아이러니와 일맥상통하는 것 같다.
결혼하고 아이들이 어려 잔손이 많이 갈 때에는 남한테 아쉬운 소리하기 싫어 많은 걸 부둥켜안고 일하며 아이들 참견하며 정신없이 세월이 갔다. 실은 그 때가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가장 아름답게 살아갈 수 있는 시기였는데, 생각나는 거라곤 허둥댄 것 밖에 없다. 그래도 아이들이 아기였을 때부터 시작하여 자라나면서 행복하고 아름다웠던 기억의 편린들이 있어 눈을 감고 짚어보면 이런 저런 일들이 피어오르긴 한다. 하나 그 세월의 추억들이 한 시간도 못되어 레퍼토리가 떨어지니, 삶은 쓰고 없어지는 소모품인가….
이제 정신적, 시간적 여유가 생겨 아이들에게 좀 더 나의 열정을 주고 싶은데, 그들은 이제 내가 자기들의 삶에 최소한으로 끼어들었으면 한다. 한때 그리도 모자라 아쉬웠던 것들이 이제는 넘치는데 그걸 억눌러야 모두 행복해질 수 있다니.
모든 일들이 적당히 닥쳐준다면 인생이 훨씬 순조로울 텐데, 대개 여러 가지의 일들이 생길 때 한꺼번에 생긴다. 맞는 예인지 모르겠지만 각 과를 막론하고 진료를 보다보면 그리 흔하지 않는 진단을 붙이는 환자가 일정 시기에 한꺼번에 만나게 되는 걸 생뚱맞게 느껴본 적이 있을 것이다. 당시에는 이상하게 여기지만 지나고 보면 더 긴 기간 동안 한 번도 만나지 못하는 질병이어서 총 빈도는 배운 것과 크게 틀리 지 않음을 깨닫게 된다.
그렇듯이 살다보면 좋은 일이건 나쁜 일이건 일들은 몰려서 한꺼번에 생기는 경향이 있는 걸 느끼는 때가 많다. 이 때문에 종종 삶의 물꼬가 전혀 다른 방향으로 틀어지기도 한다. 하지만 좋은 일이 한꺼번에 몰리면 호사다마(好事多魔)라고 조심하는 마음이 생기고 나쁜 일이 한꺼번에 몰릴 때에도 이제 더 이상 나쁠 수는 없겠지 하는 오기가 생기는 건 인생에서도 좋은 일과 나쁜 일의 총 합은 같다는 규칙에 대한 믿음 때문일 것이다.
이 세상에 적당히는 없는 것 같다. 환자도 적당히 보면 얼마나 좋을까, 요즈음 세상에 그런 마음을 가지고 진료를 하면 병원 문 닫을 정도가 되기 십상이고 살아남기 위해 진료에 성의를 다하여 병원 운영이 좀 된다 싶으면 환자에 치여 생활의 여유라곤 찾아지지 않게 된다.
이래저래 사는 건 편안하지 않은 것이고 그래서 재미있고 아름다운 건지도 모르겠다.
풍요로운 땅에는 온갖 식물이 번성을 한다. 사람은 잡초를 뽑기 위해 노동을 한다. 척박한 땅에는 식물이 자라지 않는다. 사람은 땅을 비옥하게 만들기 위해 땅을 일구는 노동을 한다. 공평하지 못함, 엇갈림 때문에 사람은 에너지를 써야 하고 그것으로 인하여 다른 것을 얻게 된다. 그것을 한마디로 단정하긴 어렵지만 살아있는 이유라고 하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