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봄, 가을로 두 번이나 유럽게 가게 되었다. 독일 함부르크와 라트비아 리가 이다.
5월의 함부르크는 저녁이면 옷깃을 여며야 하는 다소 쌀쌀한 날씨였지만 영락없는 봄 그 자체 였다. 함부르크는 아름다운 요트들이 정박해 있는 바다같은 호수 아우센알스터를 품고 있는 호반의 도시이다. 호수 주변으로 오래된 나무들이 많고 새소리가 늘 귓전을 즐겁게 하는 아름다운 도시이다. 또 호수 근처에 플란텐운 블로멘이라는, 시민들의 산책터가 되는 아름다운 식물원이 있다. 다리를 건너 조금만 걸어가면 다운타운이 나온다. 아름다운 시청이 있고 독일에서 가장 규모가 크다는 시립미술관이 있다.
5일간 머물면서 미술관도 천천히 둘어보았고 식물원은 여러 차례 돌아보며 한참을 앉아 책을 보기도 하고 앤티크 벼룩시장에 들러 보물찾기도 해 보았다. 그래, 늘 여행 온 도시에 이렇게 여유있게 머물고 싶었었는데, 이제 그 소원을 이루었다.
하루는 기차를 타고 1시간 거리에 있는 한자동맹의 중심도시 뤼벡을 보고 왔다. 뤼벡 역에서 내려 소금창고로 씅ㅆ다는 상징적 건물을 지나 홀슈타인 성문을 지나면 뤼벡 시내이다. 트래블인포에서 받은 지도에 몇 개의 성당들과 갤러리, 명소들이 길 따라 번호로 표시되어 있는데 남편과 나는 그 번호를 따라가며 돌아보는 것과 호수를 낀 주택가를 돌아 다시 역으로 돌아오는 것으로 뤼벡에서의 하루 일정을 잡았다. 성당들과 13~14세기 한자동맹의 중심지로 상인들의 전성기였던 시기의 중세풍 건물들의 모습이 고스란히 간직된 이 도시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고 한다. 역시 아름다운 시청 건물과 광장을 가지고 있었다.
광장 언저리의 역시 깊은 카페에서 커피와 그 집에서 매우 오래 전부터 만들어 온 디저트를 먹으며 잠깐의 비를 피하던 시간, 그냄새와 함께 바깥 광장에서는 가벼운 비를 맞으며 마리오네뜨의 시연이 있었는데 그때 주크박스에서 흘러나오던 음악...... 역사적인 장소나 아름다운 성당보다 뤼벡에 대한 더욱 선명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역을 향해 호숫가를 걸어 돌며 발바닥이 아파 잠깐 앉았던 호반의 벤치에서 선물처럼 받은 기막힌 순간 또한 잊을 수가 없다. 성당과 오래된 숲을 비추는 석양을 뒤로 하고 호수 위에 물결을 주욱 그으며 그림처럼 다가오던 백조 두 마리, 기가 막히게 때맞춰 들려오는 성당 종소리......남편과 나란히 앉아 감탄하던 그 순간도 뤼벡 하면 떠오르는 추억이 되었다.
오래된 도시들은 카메라 앵글을 대면 어디든 그림 같은 작품이 된다. 그리고 그사진 속에는 추억의 냄새와 소리, 그 때 느기낀 전율이 들어 있다.
10월에 방문한 라트비아의 수도인 리가 역시 한자동맹의 중심도시이다. 러시아에서 독립한지 얼마 안 된 발틱3국은 1991년 구소련에 손에 손잡고 인간 사슬을 만들며 무혈독립을 가장 먼저 시도한 나라들이다. 아직 때묻지 않은 중세도시의 모습이 잘 보존되어 있다.
구시가지를 에워싸는 작은 강 같은 수로 주변으로 정말로 오래된 나무들이 역사만큼이나 깊고 찬연한 가을 색을 입고 그 맑은 물 위 데칼코마니 같은 그림자를 드리운다. 코끝을 살짝 시리게 하는 아침 찬 공기 속 공원에 나서는 이른시간, 거리의 악사 두명이 호른의 일종으로 보이는 나팔 악기와 아코디온을 연주한다. 이 이방인이 파이릐 여운이 가시지 않은 걸 어찌 알았는지 고맙게도 그들의 선곡은 '라 비앙 로제'.
공원을 지나 구시가지로 들어가 아름다운 성당과 건물들, 광장의 아침을 느끼며 거닐다가 폐를 상쾌하게 해 주던 찬 공기가 이윽고 움츠러드는 어깨와 허벅지 살 속으로 스미기 시작할 떄,창가에 따뜻하고 먹음직스러워 보이는 빵들이 가득 놓인 카페의 문을 열고 드어간다. 마치 원래부터 그곳을 오려고 하기라도 한 걸음걸이로, 막 구운 호밀빵과 커피 한 잔을 시켜 조명 아래도 자리를 잡았다.
느긋하게 커피 한 잔을 더 시키는 시간만큼이나 책 속의 에리히 프롬과 데이트를 하고 문득 떠오른 생각으로 가방 속에서 엽서들을 꺼내었다. 오기 전 예술의 전당에서 열렸던 오르세미술관 전시회를 함께 본 세 친구들과 파리나 리가에서 엽서을 쓰기로 약속 한 것이 생각나서였다. 2년 전 터키에 함께 갔던 친구들로 이스탄불에서 보스포러스 해협을 바라보는 카페에서 함께 엽서를 썼던 기억을 떠올리며 그녀들이 내게 준 미션이었다.
리가에서는 아직 엽서을 살 기회가 없었으므로 파리에서 산 엽서들을 리가에서 쓰는 것이 되어 버렸다. 각 친구들의 이미지에 맞는 엽서를 골라 가방에 가지고 다니던 보라와 초록의 색깔 펜으로 엽서 장식까지 하였다. 이곳은 잠시 소녀가 되는 주책을 떨어도 될 것 같은 머나먼 도시 리가니까. 햇살이 제법 따뜻해지는 시간, 가벼운 발걸음으로 카페를 나선다.
리가 박물관을 들어가 보니 리가는 빙하기 이후 인류의 조상이 살기 시작한 곳 중의 하나로 신석기 시대 이후 기독교가 들어오기 시작한 12세기까지 매장의 문화가 지속되었기에 고대로부터 시신과 함께 묻힌 의류나 장신구, 생활용품들이 꽤 발굴되어 있었다.
먼저 여행했던 뤼벡과 함께 중세 한자동맹의 중심지로 역시 13~14세기 상인들이 번성을 누렸다고 한다. 성당이나 중세풍 건물들은 공산 치하에 있었기 때문에 뤼벡보다 훨씬 잘 보존되어 있다. 야곱성당인지 피터성당인지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종탑이 있는 성당에 대한 재미있는 설명이 기억난다. 부정한 아내가 성당앞을 지날 때마다 종이 울렸다고 하는데, 하도 시끄러워 종을 제거 하였다고 한다. 입가에 미소가 번지게 만드는 중세시대 억압된 성에 대한 신랄한 해학이다.
혼자의 시간을 만끽한 그날, 여행이 무르익으면 나오는 버릇인 현지인 흉내내기를 기어코 하고야 말앗다. 호텔로 돌아가는 길에 마침 경찰관이 서 있기에 우체국이 어디냐고 물었다. 가르쳐 주는 대로 어렵지 않게 우체국을 찾아 들어가 번호표를 뽑고 현지인들 사이에 앉아 기다렸다가 코리아로 가는 엽서 세 장을 부쳤다.
그것까지 하고나니 여정의 마무리가 흡족하게 되는 것 같앗다.
이제 호사스런 일탈을 마치고 먼 유럽의 향기에 취하며 가특 채워 온 충만감으로 서울의 일상을 정성스레 이어간다. 소진할때 까지 또 열심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