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같은 감염병 확산을 막기 위해서는 '공중 보건'을 '공공재'라는 개념으로 확대해 국가가 투자를 주도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세계보건기구(WHO) 메르스 합동평가단 공동 단장이었던 이종구 서울대의대 교수는 1일 한국프레스센터에서 한림원 주최로 열린 '메르스 현황 및 종합대책' 토론회에서 "(메르스 사태로) 사회 여러 곳에서 각종 취약점이 드러났다"며 이같이 주장했다.
이 교수는 이날 발제문 요약본을 통해 "앞으로는 사회 보건안전에 대한 기준을 바꾸고, 병원에 대한 안전잣대를 높여야 재난적 병원감염이 예방되고 안전문화 형성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며 메르스 확산 상황에서 관찰된 문제점을 거론했다.
그는 정보소통 부재에 따른 부실한 메르스 역학조사, 미흡한 병원감염 예방조치 및 접촉자 추적·격리조치를 주요 문제로 지적하며 국제 사회에도 국내 메르스 정보에 대한 홍보가 부족해 국가신인도 하락에 따른 경제 타격이 컸다고 분석했다.
이 교수의 이날 지적한 문제점은 전문가의 냉철한 시각이라는 점에서 전적으로 동감한다. 특히 이날 자신이 질병관리본부장을 역임한 전직 공직자임에도 불구하고 “재난상황 시 현장 공무원이 빠른 판단을 내리지 못한 것이 국내 중동호흡기증후군(MERS, 메르스) 확산 원인 중 하나라는 것, 그러나 공무원이 빠른 판단을 내리지 못하는 것은 개인의 문제라기보다는 공무원사회의 경직된 문화 때문”이라는 의견은 향후 이러한 사태를 대비하기 위해서도 깊이 새겨들어야 할 대목이다.
이 교수는 “벌어지는 현상과 우리의 지식이 달랐을 때 어떻게 해결해야 하느냐와 관련해 현장 공무원의 훈련이 중요하다”며 “관료주의 사회에서 잘 모르는 일이 벌어졌을 때 현장에서 대처하는 판단기준이 어떠한가에 따라 큰 일이 일어날 수도 있고 문제를 쉽게 처리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5월 20일 첫 환자가 발생한 후 (보건당국) 회의에 가서 역학적 고리를 찾아야 한다는 이야기를 했다”며 “그 자리에서 첫 환자가 무엇을 하고 어떻게 움직였는지 확인했냐고 물었더니 대답을 못했다. 환자 상태가 나빠 확인을 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거기서 환자 추적이 안됐던 것 같다. 답답했다”고 토로 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공무원들이 잘 모르는 사태를 맞았을 때 빠른 조치를 취할 수 없는 현실적 문제가 있다는 점을 언급했다.
이 교수는 “공무원들이 왜 빠른 조치를 취하지 못하느냐와 관련해서 이해되는 부분이 있다”며 “(질병관리본부장 시절) 인플루엔자 문제를 해결할 때, 갑자기 사망한 환자가 있었다. 이 때 질본 업무 외 조사를 좀 했더니, 네 일도 아닌데 왜 건드렸냐는 말을 들었다”고 말했다.
공무원이 빠른 판단에 따른 조치를 취했을 때 이에 대한 평가보다는 권한을 벗어났을 때 질책하는 문화기 때문에 공무원 스스로 판단해 결정하기 쉽지 않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공중보건문제가 정치화됐을 때의 문제점도 조목조목 지적했다.
이 교수는 “인플루엔자나 광우병 등은 다 정치 쟁점화 됐다. 이런 상황이 되면 공무원들은 차마 들을 수 없는 욕까지 듣는 상황이 발생한다. 그렇게 되면 공무원이 이야기할 수 있는 한계가 생기게 된다. 공중보건문제의 정치화가 문제해결을 어렵게 만드는 부분이 있다”는 점도 솔직하게 밝혔다.
이 밖에도 이 교수는 가이드라인의 부실함과 관련 “첫 환자 발생 후 ‘중동’을 통한 전파라는 것에 너무 집착하다보니 더 넓은 부분을 보지 못했다. 내부 가이드라인을 빨리 바꿨어야 하는데 그러질 못했다. 또한 메르스가 지역사회감염이 아니기 때문에 위험단계를 주의에서 위로 올리지 못했다. 이 지침이 결과적으로 일을 하는데 어려움을 키운 것 같다”고 말했다. 이 교수의 이 같은 지적은 메르스 사태에 대한 가장 적확한 진단이다.
그러기에 이번 사태를 계기로 국내 보건의료체계에 대한 고민을 보다 심도있게 해야 한다. 국내 의료기관 중 음압병상 자발적으로 만든 곳이 없다. “메르스처럼 감염병 환자가 오면 환자들이 다 도망가고, 그 피해를 의료기관이 뒤집어쓰기 때문이다.” 이번 사태가 이런 문화를 바꿀 수 있는 기회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그런 점에서 이 교수도 언급했지만 오는 9월 한국이 개최하는 국제보건안보 고위급회의를 계기로 국가 신뢰회복을 위한 '응급조치'가 이뤄져야 한다. 신종 감염병 유행으로 초래된 보건안보 위기 등을 극복할 중장기 과제 개발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향후 대책으로 에볼라 등 WHO 감시대상 감염병을 1군으로 지정하는 등 감염병 관련 법령과 운영체계를 정비해야 하며, 감염병 감시망을 대폭 확충해 '고위험 감염질환'을 조기에 발견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이 교수의 지적처럼 질병관리청(중앙)-감염병관리본부(시·도)-현장응급대응센터(시·군·구)로 이어지는 감염병 컨트롤타워 체계를 구축하고, 국내외 위기소통 강화 차원에서 '감염병 미디어 센터'를 만들어 해외 홍보에 힘을 쏟는 등의 방안이 차질없이 추진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