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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할머니의 선물 - 김숙희 (김숙희 산부인과 원장)
성인병뉴스 (cdpnews@cdpnews.co.kr) 2008-09-08 오후 1:10:00
김숙희 (김숙희 산부인과 원장)

외할머니는 내게 아주 특별한 분이시다. 슬하에 1남 2녀를 두셨고 손녀를 열 셋 두셨지만 95세로 운명하시기 전 16년을 맏손녀인 내 곁에서 나를 보살펴 주셨으니 특별한 관계가 아닐 수 없다. 더구나 두 살 때부터 초등학교 1학년까지 자주 외할머니에게 맡겨져서 자랐기 때문에 할머니는 내게 어머니보다 더 애틋한 분이셨다.

할머니와 떨어진 후에도 방학만 되면 외가에 가는 것이 내 유년 시절의 커다란 즐거움이었다. 산부인과 의사가 되고 개원을 하면서 어머니와 함께 할머니도 병원 일을 도와주시기 위해 내게 오셨으니 할머니와 같이 산지 햇수로 16년이 된다.

외할머니는 18세에 농가 지주의 맏며느리가 되셨고 동경 유학 중 병으로 귀국하신 할아버지와 사별하시고 28세에 과부가 되셨지만 꿋꿋하고 당당하게 머슴들을 부리면서 인고의 세월을 여장부처럼 살아오셨다.

청상과부로서 외아들 며느리와 같이 살지 않으실 정도로 자존심이 강하셨기 때문에 어쩌면 노후에도 자신이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하셔서 장녀인 어머니와 외손녀인 나와 사시는 것이 편하셨는지도 모르겠다.

내게 강인한 면이 있다면 이런 할머니에게서 물려받은 것이 아닌가 싶고 젊은 시절의 내 콧대 높음, 혹은 내 버릇없음, 아니면 가끔 나타나는 내 공주병 증상은 나를 항상 최고로 생각하시는 할머니 덕분이라고 여겨진다.

밤을 하나 까주셔도 제일 예쁜 것을 주셨고 언제나 내가 하는 것은 모두 옳다고 하시던 분이시다. 연로하신 중에도 잠시도 쉬지 않고 무언가를 하길 원하시는 할머니를 위해 어머니는 껍질 까지 않은 은행이나 도톨, 산나물, 마늘 등을 구해다 드렸고 할머니는 언제나 다듬고 말리고는 하셨다.

할머니는 할 일이 생기면 밤늦게까지 혹은 새벽에 일어나셔서 끝장을 보셔야 하기 때문에 어머니와 나는 할머니 소일꺼리를 조금씩 나누어 드리는 방법도 사용했다. 손으로 톡톡 터뜨리는 볼록 볼록한 비닐 포장을 좋아 하시기 때문에 문구점에서 두루마리로 사서 내 방에 감추어 두고 출근하면서 조금씩 잘라 드린 적도 있다. 그러다가 할머니에게 들켜서 한바탕 할머니와 함께 웃기도 하였다.

할머니는 작은 체구에 등이 굽으셨지만 은발의 단발머리를 하시고 은색 밍크 목도리를 두르신 모습이나, 밤색 캐시미어 모자를 쓰시고 밤색 털이 달린 코트를 입으셨을 때는 얼마나 예쁘시던지 지금도 눈에 선하다.

2~3년 전부터 할머니의 기력은 많이 약해지셨지만 주일 예배는 꼭 드리러 가셨고 예배 후 동생들 가족들과 함께 가서 먹는 해장국을 즐기시고는 하셨다. 그러나 할머니는 차츰 거동이 어려우셨고 어머니와 24시간 도우미 아주머니의 시중을 받으셔야만 했다.

전혀 거동을 못하신지 3개월이 되었지만 나는 병원일 외에 여러 가지 일들로 귀가가 늦어지고는 했다. 돌아가시기 2주전 주말에 오랜만에 일찍 귀가를 하여 호박죽을 사다드렸더니 다섯 숟가락 정도를 드시고 맛있다고 하셨다.

그러나 그 후 할머니는 평소 좋아하시는 커피를 탄 약간의 설탕물 정도만 드셨고 대부분 넘기지 못하고 올리시고는 하셨다. 우리 식구들은 각종 송년회로 아침저녁 문안 인사 외에 할머니 곁에 오래 있지도 못하고 할머니를 위해 아무것도 해드릴 수가 없었다.

24(일요일), 25(성탄절) 연휴에는 아무래도 할머니 상태가 심상치 않아 여행 계획이 있는 동생들과 친척들에게 할머니를 뵙고 가라고 하였다. 24일 주일 예배를 드리고 와서 할머니가 내 곁에 계셔서 얼마나 좋았는지 모른다고 귀에 대고 말해드렸더니 고개를 끄덕이고 입모습으로 원장이라고 부르신다.

힘들어하시는 할머니의 모습을 지키면서 그 동안 무심했던 일, 좀 더 살갑게 못해드린 일들로 가슴이 메어지는 것 같았다. 등을 쓸어드리고, 벗겨진 머리를 쓰다듬어 드리고 내 볼로 볼을 비벼드리면서 그 동안 바쁘다는 핑계로 옆에 있지 못한 것을 사과 드렸다.

24일 저녁 만해도 혈압과 맥박은 안정적이었다. 그러나 약간의 물만 드셔도 토해내시느라 수건을 깔아 드리고 화장지를 대드리면 화장지를 네모나게 접어서 입과 코 주변을 연신 닦으신다. 깔끔하신 분, 거동이 불편하실 때도 기어이 화장실에 가시면 사람을 밖에서 기다리게 하셨던 분이다.

25일 성탄절 예배를 위해 할머니께 인사드리면서 할머니도 교회에 가고 싶으시지요 하니 고개를 끄덕이신다. 근 1년 동안 할머니의 유일한 외출은 주일에 교회에 가시는 것이었다. 성탄 예배를 드리고 와서는 할머니 곁에 계속 있으면서 팔을 쓸어드리면서 기도를 하였다.

오후 두시쯤 잰 혈압은 괜찮았지만 맥박은 빨라지고 어제 보다 약한 것을 느낀다.
물을 입에 대드리니 커피를 달라고 하신다. 평소 드시는 것처럼 달게 탄 커피를 두어 모금 빨대로 빠셨지만 삼키지 못하시고 이내 뱉으신다. 할머니 귀에 대고 할머니 미안해 하니 눈을 뜨시면서 바라보신다.

할머니 사랑해 하니 콧물을 닦으신다. 아마 우신 것 같다. 아무래도 하루를 넘기시기 어려울 것 같다. 저녁 8시부터는 몸이 불편하신지 자주 뒤척이시면서 간간히 신음 소리를 내신다. 의사인 손녀딸이 아무 소용이 없다.

착하고 선하시게 살아오신 우리 할머니, 죄 많은 나도 용서해 주신 주님께 할머니를 고통 없이 천국에 가시게 해 달라고 할머니 손을 잡고 기도하였다. 할머니 천국에 가시지요 하니 고개를 끄덕이신다.

오후 8시 30분부터 호흡이 가빠지고 의식이 없어지는 것 같아 할머니를 깨우면서 숨을 크게 쉬시라고 하였다. 그러면 다시 고개를 끄덕이시면서 숨을 크게 쉬신다. 평생을 내가 원하는 것, 내가 하는 말은 모두 들어 주신 우리 할머니이시다.

옆방의 어머니와 아주머니를 부르고 목사님께 연락을 드렸다. 몇 번을 심호흡을 하시면서 몸을 뒤척이신다. 의식이 없어지시며 호흡을 몰아쉬신다. 호흡이 끊어지고 맥이 잡히지 않는다. 12월 25일 오후 9시 10분이다.

바쁨을 핑계로 곁에서 지켜드리지 못함이 늘 마음에 짐이 되었는데 그런 내 불효를 용서하시듯이 성탄절 연휴를 나와 보내시고 내손을 잡으시고 운명하신 것이다. 며칠 전부터 도우미 아주머니에게 원장 언제 쉬냐고 물으셨다던 할머니, 평생 내게 주기만 하신 것처럼 마지막까지 당신의 임종을 지켰다는 선물을 내게 주시고 가신 것이다.

성탄절 저녁에 예수님이 오신 것을 확인하시고 하나님 품에 안기셨지만 그동안 무심했던 지난 일들을 생각하면 회한으로 가슴이 미어질 것만 같다.
할머니 육신은 한 줌 재가 되어 선산에 뿌려졌지만 할머니가 주신 선물은 내 슬픔을 어루만진다. 마치 할머니가 평생 내게 해주신 것처럼 말이다.

사람들은 95세까지 사셨으니 호상이라고 하고 자손들이 복이 많아서 한 겨울 날씨답지 않은 따뜻한 날에 세상을 뜨셨다고 한다. 가족들은 자신의 말년을 의탁했던 손녀 품에서 임종하셨다고 말을 하지만 난 눈만 감으면 할머니와의 기억들로 눈물이 맺힌다.

할머니를 닮아서인지 나도 항상 무언가를 해야만 한다. 나는 여전히 분조한 하루하루에 내몰린다. 할머니의 빈자리는 가슴속에 남아 있지만 꿈속에서도 모습을 보이지 않으신다. 아마도 천국에서의 나날들이 너무나 바쁘고 즐거우신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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