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년 전 하버드대학 케네디스쿨에서 협상의 실제기법에 대해 단기간 연수받을 기회가 있었다.
그 때 게임이론의 하나로 널리 알려진 죄수의 딜레마(prisoner's dilemma) 상황을 설정하고 해답을 얻어 보는 것이 프로그램의 주요 내용이었다.
공범으로 잡혀온 두 명의 죄수 A, B가 있다고 하자. 결백을 주장하는 두 명을 격리한 후 A에게 제안을 한다. 자백을 하면 형을 가볍게 받지만, A가 자백을 하지 않고 B가 자백을 하면 A가 중형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B에게도 동일한 제안을 한다.
이 경우 둘 다 자백을 하지 않으면 둘 모두에게 이익이 되지만, 상대방을 신뢰하지 못하므로 본인이 모든 죄를 뒤집어 쓸 것을 우려해서 결국 A, B 모두 자백을 하게 된다.
즉, 최선의 전략적 결정은 상호협력일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최종 선택은 배반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서로 못 믿고 최악으로 가면 어쩌나'…협상 내내 죄수의 딜레마 고민
필자가 한미FTA 의약품의료기기 분과장을 맡아 협상을 진행하는 동안 늘 ‘죄수의 딜레마’가 머리 한구석을 짓누르고 있었다.
의약품 분야는 협상의 초기부터 양국 간 가장 중요하고도 민감한 분야의 하나였다. 협상의 결과가 죄수의 딜레마와 같이 양측이 서로를 못 믿고 최악의 경우로 내닫게 되는 상황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그도 그럴 것이 우선 국내적으로 FTA를 반대하는 진영에서는 의약품 분야를 한미FTA 4대 의혹의 하나로 제기했다. 국민들과 보건의료단체는 국민건강과 관련된 사안은 국민주권에 해당하는 것으로 협상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소리 높였다.
한편 우리 정부는 제1차 협상 시작 1개월 전 즉, 2006년 5월 초 ‘약제비 적정화방안’을 발표하였다. 아무리 좋은 약이라도 약물경제성을 평가하여 비용 대비 경제성이 있어야 하고, 이를 바탕으로 보험공단이 제약회사와 약가를 협상하여 정하는 것이 주된 내용이었다.
▶미국, 협상 초기 ‘약제비 적정화 방안’ 강력 반대
이는 기존 제도의 틀을 큰 폭으로 바꾸는 것이었고 결과는 제약사들의 기존 영업환경이 크게 달라지는 것을 의미했다.
미국 측은 FTA 협상을 앞두고 제도를 전면적으로 개편하는 것에 격렬히 반대하고 나왔다. 약제비 적정화방안의 시행이 한미FTA 전체의 핵심의제가 되어 버린 것이다. 결과적으로 2006년 7월 제2차 서울협상은 결렬되었다.
우리측은 약제비 적정화방안을 예정대로 실시하기 위해 미국 측의 오해와 의구심을 해소하는 데 노력하였다. 의약품 분야는 싱가포르 협상 등을 포함하여 3차례의 추가협상을 벌였고 지금까지 10번이나 협상 테이블에 앉았다.
결국 우리측의 끈질긴 대화와 설득을 통해 약제비 적정화방안을 2006년 말 예정대로 실시할 수 있었다.
한편으로 미국에서는 2006년 말 의회의 중간 선거 결과 민주당이 다수를 확보하면서 미국의 보건의료제도, 특히 의약정책과 건강보험제도에 대한 미국 의회의 입장은 FTA에도 보이게, 보이지 않게 상당히 바뀐 협상 환경을 제공했다.
이러한 상황 하에서 미국 측은 보다 솔직해져야만 했다. 한국의 건강보험제도를 통한 의약품 시장을 놓칠 수 없는 상황 하에서 미국의 입맛대로 억지춘향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 보다 합리적인 방법으로 선회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미측, 7차 협상부터 유연한 자세로 우리 핵심 요구 받아들여
2007년 2월에 있은 워싱턴DC의 7차 협상부터 미국 측은 유연해 지기 시작했다. 그간의 협상과정에서 그렇게도 중요하다며 관철시키고자 했던 약물경제성평가제도 시행의 연기, 인플레이션에 따른 보험약가의 조정 등 그들의 중요한 요구사항들에 대해 우리 입장을 받아들이겠다는 자세를 보였다.
우리측의 요구사항인 제네릭 의약품 등에 대한 상호인정도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표했다.
협상은 상대적인 것이다. 우리 측도 유연성을 발휘하기로 했다. 의약품분야로 인해 중요한 한미FTA 전체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쳐서는 안 된다는 판단이었다.
협상의 결과는 양국간 보건의료제도의 차이점에 대한 인정을 전제하면서 소비자의 의약품에 대한 접근의 중요성과 혁신의 필요성, 제도의 투명성 제고 등에 대한 내용들에 대해 합의하기에 이르렀다.
▶약제비 적정화 방안 지속, 미측은 제도적 투명성 보장받아
미국 측은 신약의 최저가 보장 요구도 결국 우리 입장을 받아 들였다. 우리 측은 약제비 적정화 방안 등 건강보험제도의 훼손을 초래하지 않게 되었고, 미국 측은 제도적 투명성을 보장받을 수 있게 되었다. 죄수의 딜레마에서와 같이 양측이 최악의 경우로 내딛는 상황을 상호 피하게 된 것이었다.
협상에서 ‘죄수의 딜레마’와 같은 상황을 극복하여 공동선을 추구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는가?
‘죄수의 딜레마’는 정부와 같은 공조직의 결정이나 가치의 판단은 죄수의 딜레마에서 내려지는 판단과는 달라야 한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그 의미라고 생각된다.
국가의 발전은 그 국가가 지금 하고 있는 것보다 더 많은 협조체계를 국내외적으로 구축하는 데 달려 있다고 보며, 한미FTA가 바로 이러한 발전 차원의 협조체계를 구축해 가는 매우 중요한 한 방법이라고 본인은 생각한다.
[인터넷중소병원] 기사입력 2008-01-09,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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